주요소장품
안지산
잔잔한 물결에서의 삶
안지산(1979–)의 작업은 인터넷, 신문, 잡지나 영화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가공의 세트 안에서 재구성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미 복제된 매체를 다시 회화로 복제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 작가는 그리는 대상을 관찰하고 만지고 느낀 후 캔버스에 옮긴다. 즉, 직접 자기 손과 발에 물감을 묻히고 사진이나 영상으로 이를 기록한 후 그림으로 그린다. 이 외에도 물감을 씻거나 닦는 행위를 기록하여 관람객에게 생소한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작가가 느낀 촉각적 기억을 체험하게 한다. 오랜 드로잉과 철저한 습작 과정으로 화면을 채우는 작가는 물감의 물성이 느껴질 만큼의 두툼한 질감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린다. 그에게 회화라는 매체는 다른 어느 매체보다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이다. 다른 매체로 재현된 화가의 행위를 다시 회화로 재현하는 과정을 통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의식을 화면으로 불러들인다. 안지산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프랭크 모어 미술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하였다. 이후 2013–2014년 라익스 아카데미 레지던시를 거쳐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였으며 2015년부터 국내 활동을 시작하였다.
‘잔잔한 물결’이라는 평온하고 고요한 느낌의 제목과 달리 작가가 관객에게 내미는 손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다. 〈잔잔한 물결에서의 삶〉(2016)에서 안지산은 한국인 남성으로 살면서 겪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경험을 담았다. 작품 속에서 울고 있는 남성은 네덜란드 출신 예술가 바스 얀 아델(1942–1975)의 영상 〈나는 말할 수 없이 슬퍼〉(1971)의 등장인물이다. 안지산은 아델이 자기 몸을 이용해 추락하거나 사라지는 일련의 신체적 행위를 영상으로 기록한 것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 오랜 시간 회화에 관한 진지한 물음을 이어왔다. 〈잔잔한 물결에서의 삶〉은 안지산이 작가가 아닌 관람객의 관점에서 공감했던 아델의 영상 속 한 장면을 회화로 재구성하였다. 작가의 개인적 슬픔은 아델의 작품을 빌어서 시각화되고, 그 슬픔은 제작 당시 일어난 말레이시아 항공 격추 사건, 세월호 참사와 연결되며 공통 감각화 되었다. 안지산은 슬픔을 공감하는 과정을 회화 매체에 담아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