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소장품
고산금
재해석된 타이포그래피
텍스트를 필사해서 재해석하는 개념미술작가 고산금(1966-)은 자신이 읽은 글을 인조 진주, 스테인리스 구슬, 뜨개실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기호화하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한때는 꿈이 소설가였던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스스로 문자중독이라고 할 만큼 끊임없이 읽는다. 그의 읽기는 신문기사, 독립선언서, 남북공동성명처럼 사회적, 역사적 이슈를 다룬 것에서부터 소설, 시와 같은 문학서, 철학서, 법전, 대중가요의 가사에 이르기까지 경계 없이 자유롭다. 고산금은 자신에게 여운과 생각을 남긴 글의 부분들을 꼼꼼히 계산해 음절 하나에 진주, 또는 스테인리스 구슬 한 알로 대치시키며 소통을 위한 공통의 기호인 언어를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사적인 기호체계로 전이시킨다. 이러한 그의 작업방식은 결국 글자를 베끼어 쓰는 것이 아니라 지우는 작업으로 글의 내용과 의미는 사라지고 편집형식, 즉 형태만 남는다. 이것은 “내용과 진실, 텍스트가 갖는 진실과 오보에 대한 함의, 언어가 갖고 있는 동시적 투명성과 불투명성의 관계, 그리고 의미에 대한 폭로와 숨김이라고 하는 양면성을 드러낸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재해석된 타이포그래피〉(2010)는 스테인리스 구슬을 재료로 하여 경기도미술관의 외부 수공간에 설치한 야외설치작업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대부분 작품의 제목을 통해서 작품의 원문을 확인할 수 있는 반면, 이 작품은 제목에서 원문을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필사한 원문에 대해 알려주기보다 오히려 각자가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작품의 이미지를 시지각적으로 감상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