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소장품
민병헌
몸 1
민병헌(1955–)은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중견 사진작가로, 부드럽고 은은한 회색 톤의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민병헌은 고등학교 은사이자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 홍순태(1934–2016)에게 사진 수업을 받았다. 1987년 개인전 《별거 아닌 풍경》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전시로, 이 전시를 기점으로 그의 사진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별거 아닌 풍경〉 연작은 우리가 매일 밟고 있는 땅바닥을 찍은 사진으로 현재까지도 그의 모든 작업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의 사진적 대상은 작고 의미 없고 별거 아닌 것들, 이를테면 땅바닥, 돌멩이, 풀잎처럼 사소하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자유롭게 사물을 바라볼 때 사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눈’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라고 말한 작가는 눈비가 내리거나 자욱하게 안개가 껴서 흐린 날 새벽에 주로 사진을 찍는데, 흐린 날일수록 사물이 더 미세하게 보이고 색상과 빛의 섬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병헌은 대상의 미묘한 질감과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주로 4×5 대형 카메라와 6×6 중형 카메라로 작업을 하고, 대상에 일체의 조작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흑백 스트레이트 사진만을 고집한다. 콘트라스트를 최대한 억제해 디테일을 살리려다 보니 그의 작업에서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인화’이다. 대상을 선택하고, 촬영하고, 인화하는 작업의 모든 과정을 혼자 수행하는 작가는 전통적인 사진 인화 방식인 ‘젤라틴 실버 프린트’를 고집하며 절제와 균형을 잃지 않는다.
2000년부터 시작한 〈몸〉 연작은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 중 하나이다. 서로 다른 두 몸이 겹쳐져서 이루어낸 인체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모델들에게 특정한 포즈를 요구해서 얻은 사진이 아니라 작가가 모델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발견한 인체의 미묘한 접점을 사진으로 촬영한 것으로, 신체와 신체가 만나서 이루는 미묘한 경계, 신체와 신체 사이의 틈에 주목하였다. 아날로그 흑백사진만 고집해 온 사진가 민병헌의 작품은 선명하지 않은 조금은 뿌연 화면 안엔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숨겨져 있다. “흑백 사이에 있는 회색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단계의 색이 있다”는 그의 말처럼 작품들은 쓸쓸하고 거칠면서 담백하고 또 웅장하면서 소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