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소장품
문범
천천히, 같이 #2101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문범(1955–)은 전통적 장르인 회화가 갖는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신선한 방법으로 탐구해 오고 있다. 문범은 오일 스틱을 손가락으로 펴 발라서 독특한 현상과 색채의 농담을 만들어 내는데, 오일 스틱을 사용하여 작업한 화면은 마치 한국의 전통 수묵 풍경화를 연상시키듯이 공간적이고 몽환적이다. 문범은 1980년대 이후 확산된 포스트 모던 기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회화의 본질과 존재 방식에 대해 연구해온 작가이다. 심미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전통적 회화 재료에서 벗어나, 금속 오브제, 공업용 도료, 광택제 등을 사용하고 붓이 아닌 손과 다른 도구로 형상과 비형상을 넘나드는 이미지를 창출하는 등 다양한 회화 실험을 전개해 왔다.
1990년대 중반, 문범은 〈천천히, 같이〉 연작을 통해 마치 고대 중국의 거대한 산수화에서 봄직한 산봉우리와 폭포, 바위와 언덕, 구름처럼 보이는 형태들을 거칠고 활달한 터치로 표현했다. 〈천천히, 같이 #21015〉(2003)는 마치 동양화의 화선지 위로 먹이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어떤 특정한 풍경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화폭과 재료, 그리고 손가락이라고 하는 가장 원초적인 표현의 도구가 서로 어우러져 생성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화려한 문명시대의 속도와 급격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느림과 한결같음의 미학을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