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소장품
정현
무제
정현(1956–)은 인간과 물질에 내재된 생명력을 조각 언어로 찾아가는 조각가이다. 철길을 지탱하던 폐침목, 철근, 아스팔트, 석탄 찌꺼기 콜타르 등 소용을 다한 산업 폐기물이 작업의 주재료이다. 큰 규모는 물론 오랜 시간을 통해 완성되는 조각의 특성상 작가는 연필 드로잉, 녹 드로잉, 콜타르 드로잉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무수한 드로잉을 바탕으로 조각을 완성해 나간다. 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침목을 주요 재료를 사용하여 형상은 거칠게 생략하되 나무의 질긴 물질성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며 재료가 지탱해온 시간과 생명력을 극대화한다. 작가의 말처럼 전통 조각에서 사용하지 않는 ‘하찮은’ 재료가 가진 신선함으로 재료에 내재된 강한 물질성과 본질을 부각시킨다.
작가는 홍익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1992년 원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금호미술관, 김종영미술관, 파리 팔레 루아얄 정원, 베이징 금일미술관 등 국내외 전시에 참여하고, 2024년 김복진미술상, 2017년 제11회 우현예술상, 2014년 김세중조각상, 2009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 창작부문 대상,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04년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정현의 조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료가 가지는 물질성이다. 작가는 기차의 무게를 받치면서 비바람을 맞아 세월을 기록한 침목을 자르고 찍어내어 인체 형상을 만든다. 본연의 의미를 다하고 버려진 침목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무제〉(2001)는 침목이 얽혀 하나의 형상을 이루는 가운데,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의 얼굴이 드러난다. 작가는 기차의 무게를 받치고 비바람을 맞으며 세월을 기록한 침목을 자르고 찍어내어 얼굴 형상을 만들었다. 본연의 의미를 다하고 버려진 침목에 새로운 얼굴과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얼굴은 한 존재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세월을 담은 침목의 질감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흔적이자 생명력의 증거이며, 이는 마치 우리 얼굴에 새겨진 주름과 상처처럼 삶을 증언한다. 거칠게 생략된 형상 속에서도 침목이 지탱해 온 무게와 시간, 그리고 역할을 다한 후의 고요함이 느껴진다. 소용없는 것, 버려진 것, 쓸모를 다한 것으로부터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얼굴을 부여한 작가의 시선은 우리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