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소장품
박현기
무제
박현기(1942–2000)는 한국 비디오 아트의 1세대 작가로, 드로잉, 입체, 사진, 비디오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친 작가이다. 그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영향으로 비디오 아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업은 자연과의 조화, 오브제 자체와 물성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졌던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백남준처럼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대신 오히려 탈테크놀로지한 장르를 지향하며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비디오 설치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였다. 실제 돌과 TV 모니터 속의 돌을 병치시킨 〈비디오 돌탑〉(1978), 돌과 철판으로 시소를 만들어 한쪽에 돌의 영상을 담은 TV 모니터를 얹은 〈TV 시소〉(1984), 불교 도상과 포르노 장면을 빠른 속도로 교차 편집한 〈만다라〉(1997-1999)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소위 ‘나무 손’ 연작으로 불리는 〈무제〉(1993)는 작가가 1990년대 초반 폐침목과 돌을 소재로 제작한 여러 작품 중 하나로, 기다란 폐침목의 한쪽을 마치 손가락처럼 다섯 갈래로 잘라, 그 사이에 돌을 끼워 넣고, 왼쪽에는 실제 작품을 둘러보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담긴 소형 모니터가 달려 있는 작품이다. 작가가 평생을 주재료로 삼았던 ‘돌’은 그에게 있어 태고의 시간과 공간을 포용하는 자연이자 서구 과학의 한계를 느낀 작가 스스로를 확인하는 오브제이다. 또 ‘손’은 그의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화두로, 돌과 손가락 형태의 나무로 구성된 이 작품을 관조하는 작가의 영상을 통해 작품과 스스로 하나가 되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