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소장품
김정헌
잡초
김정헌(1946–)은 작업 세계를 통해 미술로서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고자 했다. 특히 그가 자주 언급한 ‘잡(雜)’의 개념은 ‘여러 가지가 섞인 것’ 또는 ‘불특정 다수’를 의미하며, 순수미술의 ‘순수’에 반하는 개념으로 제시된다. 이는 김정헌이 공동체를 이루는 소시민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정립하고자 한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본격적으로 민중미술 작가로 활동하기 이전인 1970년대에도 김정헌은 작업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태도를 진지하게 탐구했다. 그는 오수환, 원승덕 등과 함께 1975년과 1977년의 《잡초전》을 꾸리며, 잡초라는 이미지를 통해 동시대 신진 작가들의 정서적 공감대이자 문제의식의 장을 형성하고자 했다.
김정헌의 〈잡초〉 연작은 굵은 윤곽선, 단순화된 형태, 반복적 화면 구성 등에서 페르낭 레제(1881–1955)의 구조적 조형 언어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산업사회 시각문화를 탐구했던 레제와 달리, 김정헌은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끈질기게 생존하는 잡초의 이미지를 통해 민중의 생명력과 저항성을 상징화한다. 작가는 서구 모더니즘 형식을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현실적 맥락 속에서 이를 재구성했으며, 이러한 시도는 1980–1990년대 리얼리즘 작업을 관통하는 ‘현실’과 ‘민중’에 대한 인식이 1970년대에 이미 형식 실험과 결합된 양상으로 나타났음을 시사한다.